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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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는 ♬수덕사의 여승’ 이라는 노래 때문에 더 유명해진 사찰이다.
애절한 음조의 노래는 1966년 가수 송춘희가 불러 화제를 뿌렸다.
가사의 주인공은 실제로 수덕사 여승이었으며, 한국 비구니계의
거목으로 추앙 받는 김일엽 스님이다.
여기서,
일엽 스님에 대해 문화 해설사의 귀를 기울여보자.
일엽(一葉 : 1896~1971)스님은 출가하기 전에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수필집으로 유명한 문필가이자, 한국 근대사의 대표적 여성 운동가요,
사상가다.
당시로서는 나혜석과 함께 엄두도 못 낼 자유연애 지향인 신여성이었
으며, 이화여전과 도쿄제국 미술학교를 나온 한국 최초의 여성 일본
유학생이다.
일본 유학시절 규수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은행 총재 아들과 만나
아들을 낳게 되지만 조선인 며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남자 집안의
반대로 아이를 일본에 두고 귀국하게 된다.
일엽 스님은 결혼과 재혼으로 지쳐 1933년에 수덕사에 들어와 만공 스
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나중에 일본에 있던 아들은 어머니를 찾아 한국
으로 건너온다.
어머니의 아들로 살고 싶어 했기에, 가시밭길을 마다 않고 천리 먼 길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수덕사에 있는 일엽스님을 찾아 왔건만, 자신을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으로 부르라는 대답만 들은 채 돌아간다.
아들이 군대 가기 전 한번은 만나 준 자리에서 일엽스님이 한마디 전한
말이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 놓는다.
“살아서 돌아오마”
이후 그 아들도 출가를 하게 되는데 경상북도 김천 직지사에서 수행한
김태신 스님이다.
북한 김일성 초상화를 그려 김일성 종합 대학에 걸어 둔 그 유명한 스님
말이다.
일엽一葉 필명은 나혜석과 잠시 사귀었던 춘원 이광수가 붙여준 이름이다.
대웅전을 관람하고 내려와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일엽 스님이 수행하며
기거했던 ‘환희대 歡喜臺’ 와 열반한 ‘원통보전’이 있다.
일엽 스님이 기거하던 환희대와 열반한 원통보전
2000년 수덕사 입구에 ‘수덕사의 여승’ 노래비를 세웠는데, 최근에
노래비가 없어졌단다.
소문엔 어느 스님이 한 밤 중에 포크 레인을 동원해 파버렸다는 얘기
도 들리고.
송춘희 선생이 부른 ‘수덕사의 여승’이 한창 인기 있을 때는, 이 노래로
하루에만 5개 극장에서 하루 4회씩 20회를 출연하고, 방송과 야간 업소
등 8군데를 돌았다고 한다.
그 노래를 부른 송춘희 선생은 80세가 넘으셨는데도 아직도 정정한 채,
교도소 위화위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