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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면 웃기라도 해야지

관암 2019. 11. 23. 08:18


미안하면 웃기라도 해야지

신세지며 산다 

오늘도 바람에게 신세를 진다

내게 다가온 햇살

풀벌레의 간지러운 안부

가만히 있어도 서툰 내 인생은

갚아야 할 빚만 쌓인다

어제는 없는데 사라진 것 같지 않고

지금은 있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생사를 오가면서도 사라짐은 늘 낯설다

모든 것은 흐르는 대로 두라는

떠도는 강물 이야기에 가슴을 적실 때

내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는 나무 속살처럼 고와서

내 고개를 들게 했다

 

미안하면 웃기라도 해야지

천천히 웃으면서

조금이라도

내 빛을 갚는 거야

 

-김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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